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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d1006_g

*기본 쵸로오소

*여장공 소재주의

 

 

 

-팔랑

 

그 날은 뭔가 달랐다. 뭐가 달랐냐고 묻는다면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여하간 뭔가가 달랐다. 동정 따위 옛날에 뗀 주제에 여직 숙맥 행세를 하는 우리 집 삼남이 분명히 맞는데. 포지션 한번을 바꿔준 적도 없으면서 먼저 하고 싶다고 질질 끌어내야 순결을 뺏기는 것 마냥 시뻘게진 얼굴로 겨우 따라오는 우리 집 시코마츠 맞는데.

 

‘오늘따라 묘하게 적극적이란 말이지.’

 

-팔랑

 

오소마츠가 거실 바닥에 누워 만화책을 넘기다 방구석에서 외출준비를 하는 쵸로마츠를 흘깃 본다. 그 시선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분주히 오락가락하는 모양새가 별나다. 그래, 확실히 오늘의 쵸로마츠는 평소에는 하지 않는 행동을 일삼았다. 이를테면 양치를 하다 콧노래를 흥얼거려 이치마츠를 뒷걸음치게 만든다던가, 밥을 먹으면서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다 사례가 들려 카라마츠에게 이물질을 뿜어버린다던가, 의욕이 넘치는 표정으로 오소마츠에게 다가와 누가 봐도 수상해 뵈는 모양새로 속닥거리고 간다던가.

 

게다가 그 내용이 ‘오늘 9시 ㅇㅇ호텔’이라니. 더할 나위 없이 이상하다.

 

“나 나갔다올게!”

 

읽던 만화책을 코끝에 얹어놓고 쵸로마츠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방향을 빤히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웅얼거렸다.

 

“으음.......흥분? 좀 다른데, 긴장했나? 대체 뭘 준비했길래 무려 호텔이야? 으으음... 들뜬 것 같기도 하고,”

“.......제발.”

 

일련의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오소마츠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표정을 굳히고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던 토도마츠가 총대를 메고 기어코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제발 이제 그만 좀 나가줄래. 커플들의 속사정 따위,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못 견디겠다는 듯 짜증 섞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 옆의 이치마츠 역시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한 오소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대충 신발을 꿰어 신고 집을 나섰다.

 

-타박타박

 

티 났나? 그럼 뭐 어때, 지금부터 커플만 할 수 있는 거 하러 갈 건데~ 괜히 부러워 하기는. 하고 집에 남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분통을 터뜨릴 생각을 하며 팔자걸음으로 길거리를 걷던 오소마츠가 방금 전까지 보았던 익숙한 뒤통수를 발견했다. 안 그래도 약속한 시각이 조금 남아 그때까지 뭘 해야 하나 하던 차였기에 오소마츠는 반갑게 그에게 뛰어갔다.

 

“쵸로마츄~ 나 쫓겨났어!”

 

평소 같으면 짜증을 내며 치대는 장남을 떼어냈을 텐데. 과연 오늘의 쵸로마츠는 조금 달랐다. 다다닥 달려오는 발걸음에 화들짝 놀란 그가 종이가방 같은 뭔가를 급하게 뒤로 감추며 어색하게 웃었다. 빤히 다 보이는 수에 눈치 빠른 마츠노가 장남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으나 오늘따라 적극적인 삼남이 맘에 들었기에 너그럽게 봐 주었다.

 

.......고 생각했다. 호텔 방에서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방은 생각보다 그냥저냥 평범했다. 여태껏 적당히 싸구려 모텔이나 급할 때는 2층 방구석에서 해결을 보았기에-이쯤에서 다른 형제들이 왜 그렇게 질색하는 지 알 수 있다- 호텔이 처음이라 기대했던 오소마츠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에에- 그닥 대단한 건 없네. 그냥 침대가 되게 넓고 푹신한 정도? 쵸로마츠 여기 얼마 들었어? 우리 삼남 렌카 밥값 벌어주느라 돈 없잖?”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주절주절 말하는 오소마츠를 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살핀 쵸로마츠는 가져온 종이가방을 조심스럽게 뒤적였다. 그 사이 오소마츠는 고급스러운 침대 기둥을 검지로 훑고 있었다.

 

“이야. 그래도 호텔은 다르긴 하네. 먼지 하나 없...?”

 

처음엔 불이 꺼진 줄 알았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오소마츠는 두꺼운 천 같은 것이 시야를 덮쳤다는 것을 깨닫고 소리를 질렀다.

 

“으악! 이게 뭐야!”

 

-철컥

 

곧 손목에도 이물감이 느껴지더니 아차 하는 사이 들어 올려진 그대로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오소마츠는 그제야 이 모든 게 발칙한 삼남이 꾸민 짓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니 잠깐,”

 

-찰캉

 

무심코 움직이려다 만세 자세에서 움직일 수 없음을 새삼 다시 알게 된 오소마츠는 한숨처럼 헛웃음을 내뱉으며 손목을 매만졌다.

 

“야, 미친. 쵸로마츠, 이거 진짜 제대로 된 그쪽 용품 아냐?!”

 

오소마츠의 손의 자유를 묶어놓은 ‘그것’은 말로만 듣던 털 달린 수갑이었다. 손목 보호용으로 복슬복슬한 털이 달린 수갑. 아무래도 아까 먼지 확인한답시고 훑어 봤었던 그 기둥에 걸려있는 것 같았다. 기가 찬 오소마츠가 연신 철컹대며 불러대는 것에도 일언반구 없던 쵸로마츠가 침대 위로 올라오는 인기척이 났다. 시야가 가려지자 반사적으로 다른 감각이 극대화 돼서 이불을 쓸며 침대 위에서 움직이는 쵸로마츠의 기척이 소름 돋을 만큼 생생하게 다가왔다.

 

“...쵸로마츠?”

 

-흠칫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숨결에 오소마츠는 숨을 들이켰다.

 

.......

....

..........?

 

“...안 푸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도통 움직일 기색을 않는 쵸로마츠에 오소마츠가 의문을 표했다. 근데 가만보니 제 옆을 짚은 손이 떨리는 것 같은 것이,

 

“아하, 우리 시코마츠 긴장했~어요?”

“망할 장남, 닥쳐.”

 

금세 마이페이스를 되찾은 오소마츠에 분한 기색이 역력해진 쵸로마츠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2주 전 기억하냐?”

“무슨 2주... 아, 너 설마 그거 아직도 담아두고 있었어?”

“그걸 어떻게 잊어버리냐고!!”

“뭘 그런 걸 담아두고 그르냐~”

“그런 거라니. 자고 일어나니까 캬바걸 차림이 돼 있는 게 어떻게 ‘그런 거’정도로 끝날 수가 있겠냐고!!!”

“으음....”

 

세상 그 누구보다도 억울해 보이는 목소리로 쵸로마츠가 외치자 머쓱해진 오소마츠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그때 일은 좀 심했다고 생각했었기에 더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문제의 사건의 발단은 별거 아니었다. 밝히기는 엄청 밝히는 주제에 조금만 색다른 제안을 하면 매번 칼같이 잘라 내거나 새빨개진 얼굴로 무슨 소리냐며 집어치우라고 소리 지르는 쵸로마츠에게 뿔난 오소마츠가 계획한 것이었다. 자고 있는 쵸로마츠의 옷을 갈아입히고 가발을 씌우고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며 엄마의 화장품까지 가져와 치덕치덕 발라댄 사람도 다 오소마츠였다. 처음엔 반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또 꼴리는 것이 아닌가? 자다 깬 쵸로마츠가 멍하니 마스카라로 한껏 업 된 속눈썹을 나풀거리고 빨간 입술을 일그러뜨리는 것도 좋았다. 그 꼴을 만들어 놓고도 박히는 건 저였지만 말이다. 물론 그 당시 상황파악도 제대로 안 된 쵸로마츠를 덮친 것도 저였다.

 

‘그거 지금 생각해봐도 좋았는데.’

 

아무리 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오소마츠라도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걸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한 대 맞을 것 같아 주제를 돌려보았다.

 

“아니, 그래서 지금 이게 그 일의 복수전이라도 되는 거야?”

“음....”

 

다시 말이 없어진 쵸로마츠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오소마츠가 무의식적으로 안대를 만지려다 또 찰캉 소리를 내었다. 애써 태연한 목소리를 가장하며 한마디 던졌다.

 

“쵸로마츄~ 일단 이거 풀어주라.”

“........”

“우리 쵸로시코스키 어차피 여기서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거잖? 이 형님이 잘해줄게, 응? 일단 이거 풀어주, 읏?”

 

-할짝

 

‘뭔지 모르겠지만 망했다!’

 

아마 의도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소마츠는 쵸로마츠가 평소 무엇에 가장 분해하고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당사자에게는 안타깝게도 방금 그는 눌러선 안 되는 스위치를 키고야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그래, 그럼.”

“읏-!”

 

보이지 않는 시야 속에서 쵸로마츠의 손가락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배꼽부터 타고 올라와 유륜을 매만지는 것에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오소마츠는 다가오는 기척에 등허리에 소름이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번만큼은 그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 한 번 잘 지켜보지 그래.”

 

익숙한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어조로 낮게 말하는 것을 지척에서 느끼며 오소마츠는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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