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ViyoriS2

한 남자는 둥글게 제 주변을 모여 앉아있는 아이들을 주르륵 훑어보았다. 그리도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야? 남자의 물음에 아이들은 꺅꺅, 거리며 네에- 라며 밝게 답했다. 아이들의 귀여운 반응에 남자는 입가를 올린 채 입을 열었다.

 

“이 이야기는 천호를 너무나 좋아하는 한 반요의 이야기.”

 

들을 준비가 됐니? 아이야.

 

 

[쵸로오소] 천호를 너무나 좋아하는 반요 이야기

-결박합작

비요리

토도메키 쵸로마츠 X 천호 오소마츠

 

 

 

 

“쵸로마츠~ 쵸로마츠도 마실래?”

“마실 리가 없잖아.”

“에엥, 이거 엄청 좋은 술이라고?”

“작작 좀 처먹어라, 제발.”

 

너를 어째서 좋아하게 된 걸까. 신수라면서, 천호라면서 매일 인간들 사이에서 숨어서 마작을 하는 건 기본이요, 술통에 빠진 것처럼 술내가 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건 입이 아플 정도다. 모든 것을 대충하면서도 운이 좋은지 하는 일마다 잘 되는 저 천호를 쵸로마츠는 좋아한다. 어쩌다 이런 새끼를 좋아하게 됐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지만 제 눈이 오소마츠에게만 향하는 걸 알기에 쵸로마츠는 생각했다.

 

어린 시절, 몸에 난 이상한 눈들 덕분에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고아로 살고 있던 당시. 인간들 사이에서도 요괴들 사이에서도 낄 수 없는 반요, 쵸로마츠는 언제나 혼자였다. 인간들에게는 요괴취급을 받아 언제나 따돌림을 받고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요괴들에게는 인간취급을 받아 요괴의 수치라며 잡아먹힐 뻔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계속 그렇게 살다 지쳐간 쵸로마츠가 한 요괴에게 붙잡혀 잡아먹히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오소마츠가 입을 크게 벌리는 요괴의 뒤편의 나타나 요괴의 머리를 가뿐하게 때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잘못을 해 어른이 주먹으로 딱밤을 준정도?

 

“얍! 요괴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딱밤을 맞은 요괴는 하나밖에 없는 큰 눈에 물이 고인 채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지만 쵸로마츠는 도망가지도 못한 채 땅바닥에 주저앉아 오소마츠를 올려다봤다. 사람 형체, 머리 위에는 여우귀가 달렸다. 깔끔하고 비싼 원단으로 만든 건지 햇빛에 비춰질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붉은 기모노, 그리고 구미호라고 치기에는 너무나 금빛이 나는 꼬리 9개에 쵸로마츠는 눈을 뺏겼다.

 

“음, 요괴? 가 아니네. 사람도 아니고. 뭐야, 반요인건가?”

 

상체를 낮춰 쵸로마츠의 눈높이를 맞춘 오소마츠는 그를 빤히 보다가 웃었다. 아직 어린데 고생이 심했겠네.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고서 안아 올린 오소마츠는 걸었다. 걸으면서 어리둥절, 당황해 몸이 돌처럼 굳어버린 쵸로마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을 뿐. 오소마츠는 그저 흐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이름이 뭐야?”

“쵸, 쵸로마츠..”

“그래, 쵸로쨩. 나이는?”

“10살..”

“10살이라고 하기에 너무 가벼운데. 부모가 걱정하겠네.”

 

부모라는 단어에 울컥, 쵸로마츠는 지금까지 나오지도 않던 눈물을 떨어뜨렸다. 난 부모 같은 거 없는데. 날 버린 사람을 내 부모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끅끅, 어린아이면서 크게 울음은 터뜨리지 못하고 그저 제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우는 쵸로마츠에 오소마츠는 그의 등을 따듯하게 쓸었다. 카라마츠가 입 좀 놀리지 말랬는데. 실수했나보다. 토닥토닥, 어린아이를 달래본 게 얼마만이더라... 오소마츠는 그저 위로하지도 달래지도 않은 채, 등만 토닥이며 쵸로마츠의 울음이 멈추길 기다렸다.

 

“오늘 죽으려고 했는데, 잡아먹혀서 죽으려고 했는데..!”

“뭐? 어린애가 그런 무서운 생각이나 하고.”

 

훌쩍이며 붉어진 콧등을 살짝 손으로 튕기자 놀랐는지 제 코를 붙잡고 딸꾹질을 하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웃었다. 부모도 없어 사랑은 제대로 받지 못했을 거고, 반요라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겠지. 아무도 신경을 가져는 이가 없었을 거야.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꼭 안아들고 바람에 몸을 실었다. 시원한 바람이 눈물이 지나간 자리를 쓸었다. 바람이 흘러가는 대로 멍하니 오소마츠 품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고 있던 쵸로마츠의 눈물이 그친지도 오래. 아직은 아이긴 아이구나 싶어 오소마츠는 입을 열었다.

 

“쵸로마츠.”

“으, 으, 네?”

“죽으려고 했어?”

 

한 번의 끄덕임. 하지만 그 끄덕임에 대단한 결심이 깃들어있다는 걸 안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다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이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목숨을 포기했을까? 화르륵, 붉어지는 아이의 얼굴에 오소마츠는 깔깔깔, 밉살스럽게 웃다 말을 이었다.

 

“넌 그럼 니 목숨 버린 거네? 그리고 그 목숨을 내가 주운 거고.”

“응?”

“그럼 넌 내거잖아. 잘 키워줄게, 이 천호 오소마츠님께서.”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말, 쵸로마츠는 그 말에 처음으로 어린아이같이 환하게 웃었다. 태어나고서 올라가지 않아 굳었던 입가가 올라가서 경련이 일으켰는지 부들부들, 눈물이 포퐁, 떨어뜨리는 저를 보며 오소마츠가 그저 꼬옥 안아주었던 감촉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이 기억이 쵸로마츠 눈이 오소마츠만을 담는 이유. 그때 만들었던 인연이 계속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따라다니며 지금까지 이어졌다. 만났을 때는 10살, 지금은 23살. 벌써 13년이 지나 땅꼬마였던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정수리가 보일 만큼 키가 커졌다. 눈을 초롱초롱 뜨고 달려왔던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매일 사고만치는 오소마츠에게 잔소리를 하는 이가 되어버렸지만 쵸로마츠는 이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오소마츠가 제 친구인 텐구, 카라마츠와 술을 나누는 모습을 봐도 쵸로마츠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그건 아니려나. 인간들 사이에서 지내기 위해 붕대 아래에 숨어있는 눈들이 욱신욱신 거린다. 관심 없는 척, 붕대를 꾹 잡아 누르면 사그라지지만 마음이 욱신거려 쵸로마츠는 눈을 돌렸다.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술잔을 입에 가까이 두던 카라마츠가 아까보다 작은 소리로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오소마츠, 위험할 것 같다. 저건 좀 위험하지 않은가?”

“엥? 뭐가 위험해?”

“알면서 그런 말을..!”

 

오소마츠 반응에 카라마츠가 소리를 크게 내려다 저를 힐끔 쳐다보는 쵸로마츠에 헛기침을 하며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일이 나면 어쩌려고? 감당할 자신이 있는 건가, 오소마츠? 카라마츠답지않게 작은 물음에 오소마츠는 그저 키킥, 웃었다.

 

“날 못 믿는 거야? 괜찮아, 이 오소마츠님이 다 지켜줄거니까.”

“....흠, 너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다.”

 

다시 술잔을 기울이며 다른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하는 둘을 바라보던 쵸로마츠는 입안을 터뜨렸다.

 

 

 

 

쵸로마츠의 눈에 상처가 났다. 왼쪽 눈을 길게 늘어진 자국이 오소마츠의 미간을 저절로 찌푸리기 만들었다. 카라마츠에게 그렇게 당당하게 걱정 말라며 말했건만 쵸로마츠는 저 때문에 이렇게 상처를 받았다. 신들에게 사랑을 받는 신수인 저를 시기하고 질투한 요괴들이 오소마츠와 같이 다니던 쵸로마츠를 데리고 이렇게 자신들의 자국을 남기고 사라졌다. 붉게 그어진 상처가 길게, 길게 쵸로마츠의 몸에 있던 눈들을 별자리처럼 이었다. 모든 눈에 피를 뚝뚝 흘리며 돌아온 쵸로마츠는 웃었다.

 

“너가 살려준 목숨, 다시 가져왔어.”

 

이 한마디만을 뱉고는 쵸로마츠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지만.

 

요괴에게 받은 상이라 오소마츠가 직접 만든 하얀 붕대로 눈들을 가려주었다. 요력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이 붕대를 차고 있어야해. 알았지, 쵸로마츠? 그 요괴무리들은 오소마츠가 다 죽여 버린 지 오래였지만 쵸로마츠의 상처는 죽은 요괴들의 저주를 받은 건지 나을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점점 붉어졌고, 그 상처가 깊어져 쵸로마츠는 밤마다 앓았다. 그걸 아는 오소마츠 마음에 죄책감이 하나둘 쌓여갔다.

 

카라마츠가 말할 때 쵸로마츠를 제 품에서 내놨어야했는데. 쵸로마츠를 다른 곳에 숨게 하던지 그랬어야했는데. 제 자만심이었다.

 

상처를 가리기 위해 칭칭, 붕대를 감고 제게 찾아오는 쵸로마츠를 볼 자신이 없었다. 죄책감은 점점 커졌으며 그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외면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두 번 다시 쵸로마츠가 다치지 않게,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제 죄책감에 쵸로마츠를 볼 수 없었다. 책임감이 없다고 욕해도 상관없어. 난 원래 이런 놈인걸. 도망가고 싶어. 언제나 저를 믿고 웃으며 따라와 준 아이가 저 때문에 다쳤다. 친구가 조심하라고 했는데도 대충 흘려들었더니 이렇게 돼버렸다.

 

오소마츠는 그 죄책감과 후회와 마주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의 반응에 놀란 건 오히려 쵸로마츠였다. 아니, 난 괜찮은데. 왜? 난 괜찮은데, 왜 날 밀어내는 거야? 오소마츠의 신사로 들어가기 위해 도리이(일반적인 세계와 신사를 구분 짓는 경계)를 지나가려하자 바로 저를 튕겨내는 걸 본 쵸로마츠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거 뭔데, 오소마츠. 저번에 왔을 때도 없던 결계에 쵸로마츠는 두드렸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어이, 오소마츠!”

“야 이, 여우새끼야! 지금 뭐하는 건데!”

 

이름을 불러도,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고 결계를 세게 차도 결계는 풀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소마츠 또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괜히 울 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숙였다. 어째서? 이 다친 게 뭐라고. 이 상처가 뭐라고, 날 보지 않아? 날 밀어내? 이제 난 필요 없다 이거야? 계속 너만 따라다녔는데 한번 요괴한테 잡혔다고 이렇게 날 버리는 거냐고. 이 망할 여우새끼야….

 

아침부터 밤까지 쵸로마츠는 도리이 앞에서 오소마츠를 불렀다. 욕도 꽤 많이 했고, 결계를 두드리며 발로 차기도 했다. 밤이 되면 목도 쉬었는지 켁켁 거리며 붉어진 손을 주무르면서 제 집으로 돌아갔고 오소마츠는 언제나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잊겠지. 반요라고는 해도 반은 인간이니 짧은 삶을 살 것이다. 그러니 이 죄책감은 그가 죽으면 사라지겠지 라며 오소마츠는 신수인 주제에 거지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믿었건만 쵸로마츠는 한 달이 지나서도 계속 도리이 앞에서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었다. 아니, 쟤는 지겹지도 않나? 이제 잊을 때도 됐잖아! 어이없어서 오소마츠가 지켜보고 있다 도리어 물을 정도였다. 아니 잊지 못할 만큼 내가 그렇게 큰 존재였어? 갑자기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은…. 찰싹, 오소마츠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제 뺨을 세게 때렸다. 얼얼한 뺨을 문지르며 시간을 재보자 어린아이들이 놀다 집에 돌아갈 시간. 오소마츠는 처음으로 이 시간에 찾아온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오늘은 다른 느낌…. 아침에 오던 애가 저녁에 온 것부터 다른 거 아닌가. 그리고 또 처음 시작은 이름을 불렀는데 오늘은 부르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있다 쵸로마츠는 기모노 소매에서 반짝이는 물건을 꺼냈다. 햇빛에 비춰 반짝이는 것을 제 목으로 갖다 댄 쵸로마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죽기 전에 나와, 오소마츠.”

 

허, 허, 허ㅡ?!

 

날이 잘 들 것 같은 칼을 가져온 쵸로마츠는 제 목숨을 가지고 오소마츠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아니 쟤 뭐하는 거야? 기껏 살려뒀더니만 저렇게 갑자기 그러는 거야?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오소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쵸로마츠의 손이 점점 안으로 굽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오소마츠가 제 눈에 비치지 않자 쵸로마츠는 담담한 표정으로 목을 그었다. 가벼운 상이지만 붕대가 감싸진 목에 피가 주르륵, 흘러나와 붕대를 적시자 오소마츠는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 거야, 이 미친놈아!”

“오소마츠-!”

 

아까까지만 해도 할복할 사무라이처럼 진지하던 눈이 오소마츠를 보자마자 풀린다. 계속 울었는지 붓고 붉은 눈가, 그리고 잠도 잘 못 잤는지 눈 아래가 거무죽죽하다. 아니, 너, 괜찮아? 밥은 잘 먹고 다닌 거야? 그 말을 하기도 전에 오소마츠는 무의식적으로 쵸로마츠를 안았다. 왜 이렇게 가냘퍼진거야? 밥 안 먹고 다닌 건 아니겠지. 진짜 안먹은거야? 화가 난다. 뭣 때문에 넌 이래? 아니, 왜, 내가 안 봐서 이렇게 된 거야..? 설마 아니겠지. 그치? 다시 죄책감이 몰려올 것 같다. 쵸로마츠를 품에서 놓으려고 그의 어깨를 잡자 이번엔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안았다.

 

“야, 쵸로ㅁ..”

“보고 싶었어, 오소마츠.”

 

그 한마디에 오소마츠는 몸을 멈췄다. 아니, 나 때문에 다쳤잖아, 너. 근데. 보고 싶었다는 말이 나와? 말도 안 되는, 그런, 아니, 왜?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쵸로마츠 얼굴이 다시 보고 싶었다. 얼마나 얼굴이 상했는지, 얼마나 더 못생겨졌는지 보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시 예전처럼 붙어 지내면 되겠지.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 쵸로마츠도 다시 웃으면서 날 받아줄거야.

 

ㅡ라고 생각했던 오소마츠는 갑작스럽게 뒷목에 느껴진 따끔한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추욱, 쵸로마츠에게 몸을 기댔다.

 

“하..?”

 

어째서, 왜? 란 의문이 품은 눈이 점점 감기기 시작했다. 오소마츠의 감기는 눈 사이로 울고 있는 반요 녀석이 보인다. 그 손은 칼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작은 바늘하나를 잡고 있다. 쵸로마츠는 제 품에 안겨 잠드는 그를 보며 말했다.

 

“날 버리지말아줘, 오소마츠."

 

 

 

 

감겨진 눈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눈부셔. 오소마츠가 눈을 찌푸리다 눈을 비비기 위해 손을 움직였지만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 의문에 눈을 떴다.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천장, 그리고 나무판자 틈새로 빛이 들어왔다. 창으로 들어온 게 아니었어..? 주위를 둘러보니 어두컴컴, 짙은 나무판자로 대충 만든 집이었다. 더 경악할 것은 벌레도 기어 다니는 게 보인 다는 것? 오소마츠는 히에엑,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낡고 허름한 집안이었다. 눈을 빙그르르 돌리니 높게 제 손이 붕대로 묶여있었다.

 

“이거 내가 준 붕대잖아.”

 

이 정도는 가뿐하게 찢어버릴 수 있었는데. 어라, 요력을 줄여준다고는 했지만 신수인 제 힘까지 줄여줄 줄이야. 이건 좀 놀랐네. 오소마츠는 이 붕대를 보고 이 집이 쵸로마츠의 집이란 것을 알아챘다. 아니, 어차피 마지막으로 본 애가 그 녀석이었는걸. 이런 집에 살고 있었던 건가. 혼자, 이런 집에서..여름이라 다행이었지 겨울이었으면 구멍 난 나무판자 사이로 칼바람이 들어왔을 거다. 난방도 안 될 텐데,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던 걸까. 저는 따뜻한 신사 안에서, 맛있는 밥을 먹으며 살아왔는데 쵸로마츠는 이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었던 걸까. 왠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제 얘기를 잘 하지 않던 애지만. 이렇게 숨기고 살았을 줄이야. 천호님, 상처받는다고?

 

그저 천장을 바라보면서 쵸로마츠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을 때쯤 드르륵, 문을 열며 쵸로마츠가 찻잔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눈을 뜬 오소마츠를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쵸로마츠는 찻잔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찻잔 안에는 짙은 늪같은 색의 녹즙이 들어있었다. 직접 갈았는지 쵸로마츠의 손등이 잎사귀처럼 초록으로 물들어있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자 가만히 있던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이건 수만 가지의 독초로 끓인 차야. 한입만 먹어도 인간, 요괴 그리고 신수인 너까지 한 번에 골로 가겠지.”

“허?”

 

수만 가지의 독초를 직접 손으로 끓였다고? 독초를 만지기만 해도 손이 부어오르고 가렵고 독에 상처가 났을 텐데, 가려운지 계속 손을 쭉쭉, 긁는 쵸로마츠를 바라보다 오소마츠는 침을 삼켰다. 왜 독차를 만든 거야? 그 물음에 답하려는 듯, 쵸로마츠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오소마츠가 내 옆에 없으면 죽을 거야. 너는 내가 없으면 죽을 거야?”

“그 정도는 아닌데.”

“그럴 것 같았어.”

 

그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쵸로마츠는 웃었다. 그 웃음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소마츠의 마음을 따끔하게 만들어버려서, 오소마츠는 혼자 신음을 삼켰다. 어째서, 이렇게, 따끔한 거야? 웃음을 지은 쵸로마츠의 눈에서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그 눈물이 다시 오소마츠의 마음을 쿡쿡, 바늘로 쑤시는 것같이 아픔이 찾아오자 그는 당황했다. 이런 적 없었는데..갑자기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왜 우냐고 묻고 싶어도 처음 느껴보는 아픔에, 감정에 오소마츠가 그저 어버버거리며 말을 걸지 못하는 틈을 치고 들어와 쵸로마츠는 말했다.

 

“하지만 난..너밖에 없단 말이야. 내가 죽어서도 니가 옆에 없다면 외로워서 죽을 거야.”

 

ㅡ그러니까 같이 죽어줘.

 

아니, 죽었는데 뭘 또 죽어?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오소마츠는 어버버거리던 입도 다물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는 쵸로마츠의 무릎부분의 기모노가 눈물로 인해 계속 젖어가고 있어 쉽게 장난식이라도 아무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죄를 지은 사람처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 채 눈물만 뚝뚝 흘리는 쵸로마츠를 보니 오소마츠는 입 안이 썼다.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던 아이였다. 매일 무시당하는 게 일상인 녀석이라 자신 또한 남을 무시하며 살아온 앤데 이 아이가 부탁을 해온다.

 

진심이야? 정말 내가 없으면 죽는 거야? 쵸로마츠, 너는 내가 없으면 죽을 거야?

 

나를 이렇게 필요해주던 애가 있던가? 인간들도 자기가 안 될 때만 찾아와서 공물을 바쳤고 요괴들도 나를 시기하고 질투해 죽이려고 하는데 이 아이만은 나를 원해준다. 내가 없으면 외롭데. 외로워서 죽는데. 그 말에 오소마츠는 언제나 길고 따분했던 신수의 삶에 깨달음을 찾은 듯 환하게 웃었다.

 

“그거 먹으면 돼?”

“뭐?”

“죽자, 죽어서 한 반요를 외롭지 않는다면 신수로서 꽤 괜찮은 삶을 산거지.”

 

ㅡ안 그래, 쵸로마츠?

 

쵸로마츠는 그 말에 놀란 듯 말을 하지 못했다. 정말, 정말 나랑 같이 죽어줄거야? 응, 오소마츠? 후두두둑, 눈물을 떨어뜨리면서도 아까와 다른 밝은 미소에 오소마츠도 따라 웃자 쵸로마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먹여줘도 돼?”

“상관없지만..어떻게 하려고?”

 

찻잔을 들고 제 입안에 독차를 담고 저에게 다가오는 쵸로마츠를 바라보다 오소마츠는 눈을 감았다. 느껴지는 조금 텄지만 부드러운 입술 감촉에 입을 살짝 벌리자 들어오는 독초의 쓴맛이 혀를 아릿하게 만들었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제 볼을 소중하게 감싸 만지는 쵸로마츠의 손에, 살짝 눈을 게슴츠레 떠보면 눈물을 도르륵, 흘리며 제게 입을 맞추는 쵸로마츠가 좋아 오소마츠는 괜히 독차가 달달하게 느껴졌다. 서슴없이 꿀떡, 꿀떡 독차를 목구멍에 넘겨 점점 흐려지는 의식에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나중에 봐. 따라와야 해? 이젠 나도 너가 없으면 외로울 테니까.

 

쪽, 쪽- 떨어지기 아쉬운지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에게 계속 입을 맞췄다.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를 나눈 게 이런 독차라며 오소마츠는 웃고 싶었지만 더 이상 입 꼬리를 올릴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깜박, 깝, 박. 깜-박, 깜ㅡ박. 더 이상 눈이 떠지지 않는다.

 

ㅡ암전, 시각이 닫혔다. 점점 촉각도 사라지는지 저를 안고 있는 쵸로마츠의 온기를 느끼질 못하자 오소마츠는 침을 삼켰다. 괜한 불안감이 오소마츠의 목을 조른다. 쵸로마츠, 너 나 따라올 거지? 그치? 마지막 남은 힘으로 힘껏 묶인 팔을 흔들지만 그저 미세한 움직임.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껴안고 다시 입을 맞췄다. 쪽, 쪽- 입에서 목, 쇄골까지 내려가던 입술이 멈추고는 목소리를 내었다.

 

“내 것이 되어줘서 고마워,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모든 감각이 닫혔다.

 

 

 

 

“자, 천호를 너무나 좋아하는 반요 이야기 끝.”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들어준 아이들이 눈을 비볐다. 점심을 먹고 해가 중천일때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드디어 노을이 질 때쯤 끝이 나자 아이들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계속 듣던 아이도 있지만 그에 반해 이야기 초반부터 잠이 든 아이도 있었지만. 서로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리던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손을 들며 남자에게 물었다. 이건 무서운 이야기인가요?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니? 천호님이 죽어버렸잖아요. 아이의 순수한 대답에 그는 웃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지 않을까? 이제 많이 늦었으니 다들 집으로 돌아가렴.

 

남자의 말에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한 후 제 집을 향해 뛰어갔다. 아이들이 다 가고 나서야 허리를 통통 두드린 남자 역시 집을 향해 걸어갔다. 가는 길에 들린 시장에 보이는 붉은 물로 결이 좋은 오동나무로 만든 고른 빗을 하나 사 집으로 들어가는 남자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워보였다.

 

“나 왔어.”

 

허름한 나무판자로 지은 집 안, 안쪽으로 들어가자 하얀 붕대로 손목이 묶인 채 눈을 감고 있는 천호를 보며 남자는 웃었다. 오늘도 집 잘 보고 있었어? 오늘, 빗 사왔는데 꼬리를 빗어줄게. 몇 년이 지나도 천호의 꼬리는 금빛으로 빛이 났다. 늙지도, 썩지도 않는 이 가여운 천호는 누굴 위해 죽은 걸까. 스윽, 스윽- 아까 시장에서 사온 빗으로 천호의 꼬리를 정성스레 빗어주던 남자는 후후후, 웃고는 천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오늘도 예쁘네, 오소마츠.”

 

천호를 너무나 좋아해 제 것으로 만들어버린 반요의 이야기.

 

끝.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