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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IAlaina

어둡게 가라앉은 방안, 불안에 가득찬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목소리는 차마 말이 되지 못하고 공중에 흩어지고, 몸부림에 철컥이는 수갑의 비명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끼익-

 

 

 

한순간에 모든 소리없는 비명들은 존재를 감추고 침묵을 지켰다. 철문이 열리고 방안으로 들어온것은 나른한, 아니 오히려 지루해지는 분위기의 보랏빛 후드.

 

 

이치마츠였다.

 

 

 

 

이치마츠는 들어오자마자 적개심을 가득 담고 자신의 시선을 맞부딪혀오는 오소마츠에게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순수해서 오히려 기괴스러웠다. 이치마츠는 천천히 손목과 발목에 수갑을 차서 움직일 수 없는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다.

 

 

 

"너... 너 뭐야."

 

 

 

아무말도 하지 않고 멀뚱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이치마츠에 오소마츠는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어째서냐.... 어째서냐고 이치마츠.....

 

오소마츠는 초조했다. 동생녀석의 이상하고 종잡을수 없는 행동이야 익숙했지만 이렇게 자신을 자신도 모르는 곳에 납치해 가두어 놓은것은 처음이다. 이치마츠는 한참을 뭉근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빙긋이 고양이 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뭐긴 뭐야..... 오소마츠 형의 동생... 이치마츠인데..."

 

 

 

 

.....그말을 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 네가 더 잘 알고 있을텐데 이치마츠...

 

오소마츠는 목끝까지 올라오는 말과 치밀어오르는 화를 침과 함께 꿀꺽 삼키고는 언제라도 튀어나올것만 같은 욕지기를 꾹꾹 속에 밀어넣어 혹여나 이치마츠를 자극하지 않도록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여기.... 어디야...."

 

 

망설이다가 오소마츠는 겨우 물었다. 그래, 웃기게도 카리스마 장남이라고 항상 세뇌할 정도로 호언장담하던 자신은 지금 겁에 질려있었다. 그것도 꽤나 많이. 그도 그럴게, 보통 납치한자들은 무언가 목적이 있을텐데, 예를 들자면 돈이라던가 장기를 팔려한다던가 하는, 하지만 그는 자신의 동생인 이치마츠가 설마 자신의 장기를 팔려고 자신을 이곳에 가두어 둔것은 아닐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더더욱, 이치마츠가 자신을 가둔 이유를 짐작할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더 겁이 났다.

 

"여기는 말이야.... 오소마츠 형..."

 

 

침을 꼴깍 삼켰다.

 

 

"우리 둘만의 러브 하우스야."

 

 

.....시발 지금 이새끼가 뭐라는거야. 정말 한대만 치면 안될까? 안되겠지 수갑차고 있으니까...

 

오소마츠의 정신이 점점 현실을 도피하고 있었다. 상황에 안맞게도 그는 의외로 가벼운 정신과 마음가짐을 한 채였다. 마음속의 두려움 조차도 상대가 이치마츠임을 알자, 언제 있었기나 했냐는 것 마냥 사라졌다.

 

"어이, 이치마츠~? 형아랑 러브 하우스 차리고 싶었음, 적어도 작은 멘션의 방 한칸 정도는 얻어오는 성의를 보이라고!"

 

"...미안. 돈이 없어서."

 

 

 

짜게 식은 눈으로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오소마츠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동생을 잘못 키웠어..... 는 키운적도 없지만~?

 

 

* * *

 

 

 

 

"형.... 입 벌려..."

 

"..아니 이거 꼭 해야 하는거...?"

 

"....스읍-"

 

"하아... 알았다구... 입 벌릴테니까..."

 

 

밥 정도는 혼자서 떠먹을수 있어!!?! 대체 왜 먹여주려고 하는거....!?

 

밥을 먹을 시간인지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이치마츠는 어디서 가져온걸까 죽그릇을 가져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찝찝하기 그지 없는 죽이었지만 이런곳에서 괜히 고집을 부린다면 그는 굶어죽게 될지도 모른다는것을 알기에 오소마츠는 조용히 입을 벌려 이치마츠가 입안으로 넣어주는 죽을 삼켰다.

 

 

"맛... 있어..."

 

 

 

참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맛이 있는 죽에 조금 더 마음을 놓았다. 설마 러브 하우스라고 까지 말해놓고는 자신을 죽인다거나 하진 않을것이다. 알량한 마음가짐이다. 그 역시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장남이었다. 무슨일이 있어도 동생을 믿어주고 싶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저기, 근데 이치마츄~? 형아 손목 아픈데.... 이거 풀어주면 안돼?"

 

 

그래서 그는 정말로 안일하게 잘만 구슬리면 빠져나갈수 있을거라고 믿었던걸지도 모른다.

 

 

 

 

조금 온기가 느껴지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얼음이 버스럭거리고 있다라고 느낄만큼 차가운 공기는 그의 온몸을 구속하듯 조여왔고, 소름끼칠만큼 서늘한 냉기가 삭막한 방안을 더 을씨년스럽게 바꾸는듯했다. 한순간에 오소마츠는 이치마츠의 차가운 눈동자에 점점 두렵다라고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든 수습해야만해 라고 깨닫고는 있었지만 과연 어떻게 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아니면 적어도 안아픈걸로 바꿔주던가...!"

 

 

오소마츠는 부들부들 떨면서 이치마츠의 눈치를 살폈다. 언제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았냐는듯, 자신을 향해 온기가 담긴 평소의 이치마츠의 눈동자다. 조금 안심한 오소마츠는 자기를 귀여운 아기고양이 보듯 하고 있다는걸 알고있었지만 차마 거기에 반박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는 이 상황이 굉장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는걸 깨달았다. 다시 입 앞으로 내밀어져오는 죽 숫가락을 입을 벌려 받아먹으며 오소마츠는 힘 없이 벽에 그 가는 몸을 기대었다.

 

 

 

시간은 흘러갔다. 사실 더이상 오소마츠는 며칠이나 이곳에 있었는지 의식할수가 없었다. 그저 이치마츠가 주는 밥을 기준으로 한달쯤 지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마치 햇빛을 보지 못한 꽃이 시들어, 결국 땅에 그 몸을 뉘이듯이 오소마츠는 이미 어쩌면 다시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다시는... 모두와 만나지 못할지도 몰라..."

 

 

눈물이 고여갔다. 서럽고 또 서러울 뿐이다. 그는 이치마츠가 아니면 밥 조차, 물 조차 입에 댈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마주할수 있는 사람이고, 유일하게 대화를 나눌수 있고, 또.... 유일하게, 그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였다.

 

 

 

비록 이치마츠는.... 오소마츠 자신을 이곳에 가둔 장 본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는 하염없이 문만을 바라보는게 일과였다. 혹시나 이치마츠가 작은 고양이라도 들고온다면 오랫만에 보는 밖의 존재에 절로 얼굴이 풀어져 마치 주인을 반기는 고양이라도 된마냥 그 옆에 붙어 볼을 부비는, 그러다가 혹여나 이치마츠가 자신을 꺼내주지 않을까 말을 꺼내보려다 싸늘하게 굳는 그 표정에 입을 다물고 아양을 떨어야만 하는 그런 일상이었다.

 

 

 

또다시 밖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발소리에 오소마츠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서 다시 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느때와 같이 열린 문으로 들어온 이치마츠가 자신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이치마츠...."

 

 

오소마츠는 힘없이 작게 웃으며 팔을 벌렸다. 이치마츠가 언젠가 자신이 잠든사이 수갑을 손목이 아닌 발목에만 채워두었기 때문이다. 그래보았자 이미 반항할 힘 조차, 한줌 남아있지 않았지만.

 

 

"오소마츠형... 내가 없는 사이, 잘 있었어..?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이치마츠는 알아채고 가까이 다가와 그를 꼭 안아주었다. 유일한 온기가 날아가버릴까 오소마츠는 없는 힘조차 짜내어 그를 끌어안았다. 그에 화답하듯 작게 그의 귓가에 웃음소리를 남기며 이치마츠도 그를 힘주어 안아주었다.

 

 

"....이치... 마츠..."

 

"응.. 왜그래 형."

 

"...네가... 나에게 원하는것은... 뭐야...?"

 

"글쎄.. 형이 알아서 잘.. 생각해봐."

 

 

그 시리도록 냉정한 한마디가 심장을 옥죄는듯 했다. 역시 이치마츠는 자신을 이곳에서 내보내줄 생각이 없구나... 오소마츠는 이미 반쯤 가지고 있던 희망마저 내려두었다. 그는 어쩌면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치마츠... 이런곳에 나를 혼자 버려두고 가지 않을거지...? 형아랑... 약속해.."

 

".....응... 약속할게 형... 나는 절대로.. 오소마츠 형을.. 버려두지 않아...."

 

 

이치마츠가 만족스럽게 웃고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소마츠는 눈을 감았다. 그는 그저 이 온기에 모든것을 놓아두고 잠겨가고 싶었다. 몸과 정신을 에워싸는 몽롱함에 그는 이치마츠를 안은채 모든 의지를 놓아버렸다.

 

포기는.... 오소마츠가 가장 잘하는 것중 하나였으니까.

 

 

 

* * *

 

 

그 감정은 마치 올가미처럼 나의 목을 옥죄어 왔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나는 생선을 눈 앞에 둔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환하게 우리를 향해 지어주는 미소라던가, 우리를 챙겨주는 마음 이라거나. 분명 너는 나와 같은 나이인데도. 우리는 쌍둥이 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챙기지 못해 안달인 당신이 좋아서. 같은 쓰레기고, 항상 장난을 치고, 어른스럽지 못한 아이같지만, 언제나 이치마츄~ 하고 나를 부르는 그 애정어린 목소리가 좋아서.... 그래서.

 

 

 

"오소마츠 형....."

 

 

잠이 들어 감긴 속눈썹에 울기라도 했는지, 촉촉히 젖어든 너의 눈가를 손끝으로 쓸어 그 이슬을 닦아냈다. 순순히 잠들어 내 품에 안겨있는 너는 마치 지옥에 떨어진 천사처럼 천천히 나의 어둠에 물들어 갈것이었다. 빛을 잃은 그 눈동자가 나를 향하는게 싫어... 하지만 형이 남들과 있는 모습을 보는게 더 끔찍한 나로서는 이것은 또하나의 사랑법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너를 나만이 아는 나만의 장소에 가두어 그 날개를 오물로 물들여 천천히 부스러트려갈 뿐이다.

 

 

"....사랑...해."

 

입밖으로 그리도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작게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너의 눈물에 젖어들었던 짠맛이 나는 그 붉은 꽃잎을 입술에 머금듯 너의 향기에 취해 그 한단어가 너에게 스며들어 너도 나만을 바라보기를 바라고 또 바라, 네게 속삭일 뿐이다.

 

 

사랑해... 라는 전해질리 없는, 그 단 한마디 만을.

 

 

 

 

그는 자신이 붙잡은 붉은빛을,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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